옛 사택촌, 환한 꽃으로 피어나다

사방이 꽃 천지다. 해바라기, 장미, 접시꽃, 벌개미취, 채송화, 백일홍…. 벽화라는 이름의 꽃 사이로 ‘진짜 꽃’이 활짝 피어 있다. 보랏빛 가지도 새빨간 고추도 꽃처럼 환하긴 매한가지다. 한 뼘의 땅만 여분으로 존재해도, 씨를 뿌려야 직성이 풀리는 동네 어르신들 덕분이다. 굴다리부터 시작된 걸음이 마을 안길로 이어지면 ‘또 하나의 꽃’이 외지인을 반긴다. 마을회관 밖으로 새어 나오는 주민들의 ‘웃음꽃’이 그것이다. 이곳에선 30명 안팎의 어르신들이 매일같이 모여, 식사를 함께 하고 수다를 같이 떤다. 지난날의 서러움은 그리움의 벽에 새기고, 오늘의 외로움은 즐거움의 밭에 묻는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도록’ 서로를 있는 힘껏 받쳐주는 관계. 이분들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불현듯 선명해진다.
상장동 남부마을은 과거 함태탄광에서 근무하던 광부와 그 가족들의 사택촌이던 곳이다. 석탄 산업이 호황이던 1970년대엔 무려 4,000여 명의 광부가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밥집이며 대폿집이 골목마다 즐비해서, 최고의 번화가이자 중심가로 오랜 시간 활약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건 1993년 12월 함태탄광이 문을 닫으면서다.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던 이곳이 석탄산업합리화의 칼끝을 피해가지 못하면서, 흥청대고 복작대던 이 마을은 ‘남을 사람만 끝내 남은’ 주택가가 됐다. 남부마을 주민의 80%는 아직도 광부였거나 광부 가족이었던 사람들이다. 집의 크기도 집의 구조도 거의 같은 옛 사택촌에서, 같은 과거를 공유한 채 같은 오늘을 살아간다. 괴산, 정선, 단양, 문경, 안동, 삼척…. 각기 떠나온 그곳보다, 함께 살아온 이 마을이 이분들에겐 더 고향 같다. 이곳에서 보낸 세월이 40년을 훌쩍 넘는 까닭이다. 석탄 산업은 과거완료형이지만, 주민들의 우정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산업화의 주인공이었다는 자부심과 우정을 바탕으로 한 협동심. 이 동네를 움직이는 두 가지 힘이다.

Tip 1. 상장벽화마을축제
마을에 벽화가 그려진 지 7년 만에, 그 벽화를 주제로 한 마을축제가 마련됐다. 태백시와 강원랜드의 후원으로 주민들이 직접 준비하고 진행하는, ‘작지만 큰’ 페스티벌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축제가 열리는 한여름 상장동 남부마을에 오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마을 어머니들의 정성어린 음식을 만날 수 있다.


“제 고향은 대구예요. 1986년 우연히 이 마을에 왔다가 여태 이곳에 살고 있어요.
광고기획을 하는 저는 광부로 일했던 이 마을의 모든 분을 존경해요.
그분들의 모습이 담긴 벽화를 모티브로,
첫 번째 축제를 진행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주민들이 기꺼이 힘을 보태주셨어요.
언제나 든든합니다.”
- 손원길(주민자치위원장 & 축제위원장) -

벽화로 변화는 시작되고

상장동 남부마을의 벽화작업은 2011년 ‘뉴 빌리지 태백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지역주민 스스로 아름답고 쾌적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이 운동을 통해, 침체된 마을 분위기를 되살리기로 주민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남부마을발전위원회가 구성되고 7명의 발전위원이 위촉됐다. ‘아름답고 쾌적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변화의 도구로 선택했다. 골목의 칙칙함을 단번에 바꿔줄 밝고 예쁜 그림 대신, 이곳에 살았던 광부들의 ‘힘들지만 찬란했던’ 지난날을 벽화의 소재로 결정했다.
“광부들의 삶을 그린다고 하자, 처음엔 반대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곱고 환한 그림들도 많은데 왜 굳이 ‘어두운’ 그림을 그리려 하느냐는 의견이었죠. 그분들을 만나 일일이 설득했어요. 금방 이해해 주셨고, 이젠 누구보다 좋아하세요. 가장 좋은 건 나예요. 집 앞의 벽화를 볼 때마다 남편이 광업소에 다니던 젊은 날로 돌아가는 기분이에요.” 7명의 초대 발전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최명업 씨(68세)의 말이다. 마을에 벽화가 그려진 게 너무 좋아서, 여행자들이 찾아오면 안내와 해설을 자처하는 그녀다.

광부들의 모습이 벽화로 그려진 뒤, 이 마을은 그대로 ‘기억’의 공간이 됐다. 과거 광부로 일했던 이마을 어르신들은 동네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자신의 ‘빛나던 한때’로 틈틈이 돌아간다. 기억을 선물 받는 건 여행자도 마찬가지다. 까맣게 잊고 있던 광부들의 슬픔과 기쁨을, 어느덧 사라져간 골목 위의 따뜻함과 즐거움을, 벽화를 통해 마음에 담아간다. 그토록 고마운 이 마을 벽화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재능기부로 그려졌다. 이 동네가 고향인 허강일 화가가 벽화작업을 주도해, 온마을이 ‘그리움’이 가득한 그림들로 채워졌다. 마을주민과 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상장동주민센터의 적극적인 협조, 강원랜드의 통 큰 후원. 그것이 벽화마을을 만든 환상의 ‘삼박자’다.
“문제는 벽화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거예요. 빛이 바래가는 벽화들을 수시로 손봐줘야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마을 축제예요. 벽화를 모티브로 해마다 축제를 열면, ‘그걸 위해서라도’ 벽화를 제대로 관리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제1회 상장벽화마을축제(지난 7월20일-21일)를 앞두고, 7년 전 그때처럼 주민들이 또 한 번 똘똘 뭉쳤어요. 준비 기간엔 주민들이 마을을 다함께 단장했고, 축제 기간엔 마을 어머니들이 손수 음식을 만들어 관람객들을 맞았죠. 주민들이 하나 되는, 참된 의미의 마을 축제였어요.
주민자치위원장이자 축제위원장인 손원길 씨(60세)의 말이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첫 축제’인 데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는데도, 1,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을에 다녀갔다.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웃으며 돌아갔다. 손원길 위원장은 광부 출신이 아니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1986년 우연히 태백으로 왔다가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며 이제껏 산다. 그에게 상장동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동네다.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지금은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게 그의 느낌이다. 마음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들. 이 마을에 깃든 건 ‘우연’이지만, 그런 이들과 함께 살아온 건 ‘행운’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7년 전 벽화마을을 만들 때 일이에요.
예쁜 그림도 많은데 왜 굳이 어두운 탄광촌을
그리느냐며 반대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분들을 만나 일일이 설득했죠. 금방 이해해주셨고,
이젠 누구보다 좋아하세요. 가장 좋은 건 나예요.
집 앞 벽화를 볼 때마다, 남편이 광업소에 다니던
젊은 날로 돌아가는 기분이에요.”
- 최명업(벽화마을 초대 발전위원) -

진작 떠나고도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

상장동 남부마을은 태백산과 함백산에 에워싸여 있다. 사람이 벽에 그린 그림을, 자연이 스스로 그린 그림이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동네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인 셈이다. 이 마을의 벽화는 하나같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것들이다. 주름마다 탄가루가 스민 광부의 미소는 너무 환해서 가슴이 뭉클하고, 아들을 무릎에 앉힌 아버지의 표정은 너무 담담해서 콧날이 시큰댄다. 갱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 광부들도, 저탄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이나 선탄작업이 한창인 아낙들도,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안긴다. 진작 떠나고도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 벽화가 존재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이 마을 주민들이다.
벽화가 그려진 외벽에는 자전거나 빨래건조대 같은 것들이 더러 세워져 있다. 과거의 삶과 오늘의 일상이 ‘사이좋게’ 포개져 있다. 문패 그림도 눈에 띈다. 이 마을 캐릭터인 만복이(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전설’의 강아지)가 지폐 대신 종이를 물고 있다. 그 종이에 집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어,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돈다. 좁은 골목에 고운 바람이 문득 불어온다. 오늘 처음 왔는데도, 벌써 이곳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