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동 중석광업소 우측 골짜기에 있는 화강암(化剛岩)으로 된 큰 바위이다.
바닥의 넓이는 천여 평이 넘고 높이는 큰 빌딩 정도의 웅장한 벼랑이 치솟아 있으므로 ‘꼴두바위’라 한다. 예전 사람들은 상동을 꼴두바위라 불렀는데,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鄭澈)이 이 바위를 보고 “먼 훗날 이 큰 바위 때문에 심산계곡인 이곳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 바위를 우러러 볼 것이다.”라 예언했다고 한다.

송강(松江) 정철(鄭撤)의 예언대로 상동중석이 번성했을 때는 수만 명의 인구가 이 바위를 우러러보며 살았었다. 옛날 구래리에 젊은 부부가 주막을 차리고 나이 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다행히 손님들이 많아 먹고 살 만큼의 돈은 벌었으나 한 가지 걱정은 자식을 갖지 못한 것이었다. 며느리는 온종일 찾아오는 손님의 뒤치닥 거리에 지쳐 쉴 때가 되면 시어머니는 그때부터 자식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에 대해 구박이 시작되었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는 도승을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말하였다.

“스님,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 자식을 얻지 못했습니다. 제발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십시오.”
며느리의 말에 늙은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꼴두바위에 올라가서 석달 열흘 동안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으나 그 대신 주막집은 손님이 끊겨 당신네 집안은 다시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요.”
이 말을 들은 며느리는 자식을 얻고자 하는 일념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꼴두바위에서 치성을 드렸다. 시어머니는 손자는 얻을 수 있으나 또다시 가난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며느리의 소행을 괘씸하게 여겨 며느리에게 밥도 주지 않고 구박과 학대를 하였다. 이러한 시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꼴두바위에다 치성을 드리던 며느리는 결국 백일을 채우지 못하고 자식에 대한 한을 간직한 채죽고 말았다.
그 후 하늘에서는 이 여인 대신 꼴두바위로 하여금 중석을 잉태하게 하여 한을 풀어주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마을 사람들도 그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돌로 여자 모양의 꼴두각시를 깎아놓고 제사를 지내 주었는데, 일제 때 일본 사람들에 의해 파손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