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남은 탄광의 향취

태백은 외지인들의 ‘이주’로 형성된 도시다. 쇠붙이를 빨아들이는 자석처럼,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달처럼, 60~70년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을 불러들이던 이 지역 탄광들. 황지자유시장은 바로 그 탄광지역 사람들의 생필품 공급을 위해 1971년 설립됐다. 시장도 이주민들의 삶터이긴 매한가지다. 광부 대신 상인의 삶을 택한 외지인들이, 한때는 타향이었으나 어느새 ‘고향’이 돼버린 이곳을 여태 꿋꿋이 지키고 있다. 그 흔적이 시장 골목에 고스란하다. 부산감자옹심이, 봉화상회, 완도상회, 제천닭집, 서울떡집, 경북제유소, 충북식당…. ‘떠나온 곳’을 향한 애정이 가게 이름들에 오롯이 녹아있다. 방방곡곡에서 날아온 그리움들이, 알록달록 간판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시장이 정식으로 설립되기 전에도 이곳엔 가게들이 존재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대동국수공장은 1961년에 문을 연 ‘터줏대감’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김상진 사장님(65세)이 제면기로 국수를 뽑고 있다. 반죽된 밀가루가 롤러를 타고 여러 번의 쳇바퀴를 스스로 돈다. 롤러를 빠져나온 반죽이 촘촘한 홈을 지나 한 가닥씩 갈라지는 모습도, 쏟아져 나온 국수를 싸리나무가지를 이용해 건조대에 거는 광경도 여간 흥미롭지 않다. 한때 10여 곳에 이르던 태백의 국수공장들은 현재 이곳만을 남겨둔 채 모두 문을 닫았다. 눈앞의 ‘그림’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요즘 대동국수공장의 최대 고객은 시장 인근의 닭갈비가게들이다. 광부들이 즐겨먹던 ‘물닭갈비’엔 갓 뽑은 우동사리가 제격. 탄광은 사라졌어도, 탄광의 향취는 아직 그대로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가게를 삼십 년 전부터 내가 하고 있어요. 이게 반복되는 노동 같아보여도,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아요. 온도와 습도에 따라 소금물의 농도를 달리해야 하거든. 계절과 날씨에 따라 건조시간도 달라지기 때문에 일기예보에 늘 귀를 기울여야 돼요. 그래도 이일이 재미있어요, 시골할머니들이 직접 재배한 메밀가루를 가져와 면으로 뽑아달라고 할때나, 여행객들이 시장구경을 왔다가 ‘옛 생각이 난다’며 국수를 사갈 때 기분이 좋아요. 언젠간 문을 닫겠지만, 그때까지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시장에서 보낸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할머니는 영업 초기 ‘산업역군’들에게
밥을 해 먹이던 즐거움을 여태 잊지 못한다.
탁자는 네 개인데 손님은 언제나 그보다
많았다. 근처 다방에서 기다리다
‘자리가 났는지’를 수시로 확인하던
광부들의 얼굴이 그녀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다.



즐겁게 일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상동집 양효순 할머니(70세)를 빼놓을 수 없다. 고향이 전주인 그녀가 황지자유시장에서 국밥집을 운영한 지 올해로 36년. ‘시장에서 보낸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할머니는 영업 초기 ‘산업역군’들에게 밥을 해 먹이던 즐거움을 여태 잊지 못한다. 탁자는 네 개인데 손님은 언제나 그보다 많았다. 근처 다방에서 기다리다 ‘자리가 났는지’를 수시로 확인하던 광부들의 얼굴이 그녀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다.
“광업소에서 일하던 시절 여기서 국밥을 먹던 분들이,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이따금 와.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몰라.”
양념을 아끼지 않는 할머니의 겉절이는 매일 아침 새로 담그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 국수공장에, 국밥집에, ‘사소하지만 위대한’ 일상들이 숨어있다.

하늘도 가깝고 바다도 멀지 않은 고원의 장터

이곳에선 ‘극과 극’의 높이에서 자란 특산물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한쪽에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원에서 자란 채소와 약초가 가득하고, 다른 한쪽에는 해발 0m의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들이 즐비하다. 태백의 대표 특산물인 한우는 고원에서 자란 풀을 날마다 먹고 자란 것들이고, 이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해산물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동해안에서 때마다 공수해온 것들이다. 하늘도 가깝고 바다도 멀지 않은 고원도시에서, 싱싱한 농수산물을 만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황지자유시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다름 아닌 ‘제유소’다. 참깨와 들깨로 기름을 짜는 곳을 이 지역에선 기름집 대신 그렇게 부른다. 고춧가루를 빻는 곳이기도 하다. 한낮의 폭염이 아직 물러나지 않았는데도, 기름을 짜거나 고추를 빻는 이곳의 기계들은 쉬이 멈출 줄을 모른다. 고향에서 올라 온 참기름 몇 방울이나 고춧가루 한숟갈로 거친 밥상과 시린 마음을 다독여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제유소가 늘어선 이 시장에 한 번쯤 와볼 만하다. 태어난 지 9개월 된 윤호는 경북제유소 집 아들이다. 이 아기의 주요 일과는 할머니 장영희 씨(71세)가 밀어주는 유모차를 타고 시장 한 바퀴를 도는 것이다. 이곳에선 이미 ‘인기스타’다.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시장 사람들의 애정 어린 눈길이, 윤호의 미래에 먼저 가서 환한 등불을 켜놓을 것이다. 어디 이 꼬마뿐일까. 우리는 대개 재래시장에 빚이있다. 넘치도록 받았으되 ‘갚지는 않아도 되는’ 온기와 활기가, 불현듯 눈물 나게 고마워진다.

황지자유시장은
석탄 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던 1971년 태백의 중심가에 세워진 상설시장이다. 탄광은 사라졌지만 시장은 건재하다. 해발 1,000m의 고원에서 자란 채소들과 해발 0m의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