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다, 변화하다

우리에게 예술이란 대개 고통과 동의어이다. 위대한 작품이란 왼쪽 귀를 자르고, 외딴 섬에 숨어들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치유가 불가능한 병을 앓는 아픔 속에서 태어난 결과인 경우가 얼마나 많았으며 그 얼룩덜룩 아픈 여정들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인지 증거로 쓰이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임지빈 작가는 출발부터 눈에 띈 작가였다. 대학 재학 중에 상하이 비엔날레의 초대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단박에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대한민국 혹은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아티스트로서 받는 칭송에 부합하는 활발한 작품을 쉼 없이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타인의 삶은 ‘남의 집 잔디밭’ 같기 마련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고 멋져 보일 뿐, 그 안에 움푹 패인 땅이나 상처 난 이파리들, 집요하게 들러붙어 있는 진딧물 따위는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많고 기회가 많은 서울에 올라오는 것, 내 작업실을 갖는 것이 꿈이었어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단가가 센, 이를 테면 공사장 인부, 가구 배달, 인테리어 현장 잡부 같은 아르바이트를 했고, 돈을 위한 일과 전시회를 위한 작품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저녁 6시에 일이 끝나면 새벽 3, 4시까지작 업을 하고 몇 시간 눈을 붙인 뒤 다시 일을 시작하는 일상이었지요. 서울 갈 경비도 마련하고 전시회 준비도 해야 했으니까요.”
그는 이야기 끝에 자신의 무딘 성격이 지난 세월을 버텨온 근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소회도 덧붙였다. 처음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작품을 판매해서 돈을 번다거나 하는 것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고 그저 묵묵히 작품에만 매달렸는데 “예전에 꽤 힘들었구나”하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문득 하게 된 게 특유의 무딘 성정이 비로소 알게 한 뒤늦은 자각이었다는 것이다. 예민하거나 까다롭지 않은 성격은 어쩌면 지금의 그가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려움이나 아픔을 그저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데뷔 이후 12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스스로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묻자 그가 잠시 머뭇거린다. 그리고 천천히 신중하게 답변을 꺼내 놓는다.
“지금은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많이 열어놓고 하는 것 같아요. 그 방식이 사진이 되기도 하고 설치가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하는 등 훨씬 다양해졌죠. 예전에는 사회 현상들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담고 메시지도 전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가벼운 일상적인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됐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젊었던 시기에 날카로웠던 것들이 좀 더 둥그러지고 여유를 갖게 되면서 스펙트럼이 유연해지고 넓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어 벌룬과 함께 거리로 나서다

벌룬 작업도 아마도 그 맥락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터였다. 그리고 벌룬 작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맥락보다 더 정확한 회의감도 있었다. 6개월에서 1년까지 공들여 준비한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면 실제로 전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관계자들뿐이라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폐쇄된 전시장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공감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에게 새로운 재료를 찾아 나서게 했고 벌룬은 그렇게 그와 조우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어요. 필름카메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도 정말 많이 찍으러 다녔습니다. 저는 건물을 볼 때마다 사람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곱게 사셨던 분들과 고약하게 사셨던 분들을 보면 결국 얼굴에 다 드러나잖아요. 어릴 때는 감출 수 있지만 세월이 거듭되다 보면 그게 결국 티가 나는 것처럼 지난 세월이 드러나는 그런 건물과 공간을 이용한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벌룬을 시작하게 됐고 일상적인 그 공간에 제가 게릴라 형태로 벌룬을 설치하면 그 순간만큼은 그곳이 미술관이 되기를 바랐죠. 처음에는 ‘순간 미술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말을 하다가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서 맥 딜리버리처럼 ‘찾아가는 미술관’이라는 형식으로 여러 군데 설치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2010년부터 시작한 벌룬 작업은 2018년인 현재 임지빈 작가의 작업 중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그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프로젝트는 역시나 벌룬을 이용한 <EVERYWHERE>다. 이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건물이나, 골목, 공간에 대형 베어 벌룬을 설치하는 것으로 베어 벌룬들은 커다란 공간에 끼여 앉은 채로, 엎드린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녕!” “나랑 놀자!” “에고, 끼었네” 따위의 말을 건넨다.
“<EVERYWHERE>는 여기저기 끼어있는 컨셉으로 작업을 하는데 그게 우리 모습하고 참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최근에 운전면허를 땄기 때문에 그동안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했었는데 지하철만 타도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런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 풍경에 사람들이 큰 공감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작가로서 정말 큰 힘을 얻죠.”
혼자서 벌룬에 바람을 넣고 설치하며 그 과정을 죄다 촬영해야 하는 힘든 과정이지만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그 낯선 거리에 묘한 위로와 생기를 불어넣었고 놀이감 하나 없는 남루한 거리에서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줌으로써 임지빈 작가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서, 공감의 예술을 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하이원 리조트와 함께 한 새로운 도전 그리고 꿈

하이원 리조트와 함께 한 <달콤, 달곰 프로젝트>는 꾸준히 해온 그의 벌룬 작업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평창동계올림픽 전시 때문에 계속 강원도에 있었어요. 강원랜드에도 와본 적이 있었는데 일반적이지 않은 ‘카지노’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카지노에 오는 분들은 보통 미술하고 크게 관련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걸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 거죠.”
공간 자체가 주는 매력도 컸다고 임지빈 작가는 고백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아름다운 주변 풍경, 카지노손님도 있지만 가족들도 북적이는 그곳이 그에게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의욕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제가 한 작업 중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작업이었다는 것이에요. 높이만 15m에 달하는 작품인데, 벌룬의 특성상 어느 정도 사이즈가 넘어가면 바람의 저항을 많이 받습니다. 기술적으로 찢어지는 경우도 많고 바람을 못 견디는 경우도 많거든요. 다른 벌룬 작업의 전시 기간이 대략 한 달 정도인데 <달콤, 달곰 프로젝트>는 3달 이상 전시를 하니 사실 그건 지금도 걱정되는 부분이에요.”
특별한 점은 또 있었다. 이번 작업에서 패턴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 점이 그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포인트인 ‘달곰’에게 조명을 비추면 달곰의 곰털 무늬가 달의 표면처럼 변하도록 한 것은 옛사람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한 것. 여기에 임지빈 작가는 서로를 껴안고 위로해주는 동작을 통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 따듯한 메시지를 전한다.
임지빈 작가는 “공공미술은 세상에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자신부터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공공미술에 감동을 받으며 예전에는 자연을 통해 감정을 이끌어 냈다면 지금은 공공미술이 그 역할을 작게나마 대신해 줄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공감을 통해 모두가 함께 즐기는 예술을 꿈꾼다는 임지빈 작가. 10년 후에도 오늘처럼 쉬지 않고 작업하는 자신을 꿈꾸며, 해외에 더 많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세상이 좀 더 행복하길 바란다는 소망과 같은 문장으로 들려왔다.


임지빈 작가는 “공공미술은 세상에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자신부터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공공미술에 감동을 받으며 예전에는
자연을 통해 감정을 이끌어 냈다면 지금은 공공미술이 그 역할을
작게나마 대신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좌) How’s Your Day Today? / (우) Slave-I’m in Pain Because Of You

How’s Your Day Today?
1600×1600×200(mm) Variable installation car paint on plastic
고달픈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다채로운 컬러스펙트럼의 베어브릭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대변함으로써 문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내면의 이야기를 전하는, 소통과 매개의 역할을 한다.

Slave-I’m in Pain Because Of You
300×400×600(mm) car paint on plastic, a horn of water buffalo 2012
‘I’m in Pain Because Of You’ 연작 시리즈 가운데 한 작품. 뿔 달린 베어브릭을 통해 박제된 인간의 소유물을 표현했다. 박제된 소유물에 인간의 욕망을 투영, 즉 ‘욕망하고 있는 인간’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욕망 또한 일상적이고 평범할 수 있다 말한다.



(좌) Slave–Space in LOVE / (우) Everywhere in High1

Slave–Space in LOVE
2000×2000×2500(mm) Variable installation balloon 2014
‘Slave–Space in LOVE’ 시리즈 가운데 한 작품. 색맹표를 연상시키는 물방울무늬로 채색된 베어브릭은 친숙함을 불러일으켜 보는 이로하여금 감정적 동요와 반응을 이끌어 낸다.

Everywhere in High1
Variable installation balloon 2018
‘달콤, 달곰 프로젝트’ 하에 하이원 그랜드 호텔 정문에 전시된 베어벌룬. ‘포옹’하고 있는 두 베어벌룬(또는 베어브릭)이 현대인의 무게와 고뇌를 위로한다.



Everywhere in Taipei

Everywhere in Taipei
Variable installation balloon 2016



Everywhere in Viet Nam

Everywhere in Viet Nam
Variable installation balloon 2016
대중과 예술이 보다 가까워졌으면 했던 작가의 의도와 바람이 투영된 ‘Everywhere’ 프로젝트. 예술 작품이 사람들과 함께 또 다른 일상을 일구어가길 원했던 작가는 ‘일상적 공간에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방식으로 작품을 선보였다. 이 거대한 베어브릭 에어벌룬은 설치를 통해 전시되며 동시에 영상과 사진을 통해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