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넘었을 무렵 도시 생활을 접고 짐을 꾸려 대관령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눈이 펑펑 내렸고 내린 눈은 녹지 않은 채 얼었고 그 위에 다시 눈이 펄펄 날렸다. 살아가는 일이 막막하게만 여겨졌던 날들이었다. 그 차갑고 하얀 겨울 동네에서 내가 찾아낸 곳은 문을 연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그곳은 낮 동안 내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산골짜기 외딴 고향집에서 도서관까지는 이십여리가 되었는데 하루 네 번 시내버스가 오갔다. 학생들이 등교할 때 이용하는 버스는 너무 일러서 이용하지 못하고 오전 열 시 반쯤에 마을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한밤중에 넉가래를 들고 집에서 정류장까지 가는 길을 치고는 했다. 그래야만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치는 수고를 조금 덜 수 있고 게다가 늦잠까지 청할 수 있었다. 눈을 치지 않으면 오가는 이가 드문 골짜기 외딴집이라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 나가야만 했는데 정류장에 도착하면 이미 신발과 바지는 젖거나 얼어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기에 자정쯤되면 나는 으레 소주 몇 잔을 비운 뒤 넉가래를 들고 집에서 기르는 개 풍순이와 함께 눈 덮인 길위에 서 있곤 했었다. 눈보라가 칠 때도 있었고 바람없이 굵은 눈송이가 함박꽃처럼 뚝뚝 떨어지던 밤도 있었다. 오토바이 정도가 지나갈 수 있게 눈을 치면서 나는 자주 허리를 주물렀고 더 자주 한숨을
토해냈다. 어쩌면 그 겨울 내내 길 위에 덮인 눈을 친 게 아니라 한숨을 퍼서 길 밖으로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납득할 수가 없었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왜 깊고 깊은 겨울밤 눈을 치다 눈 위에 주저앉아 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 술을 마셔야만 하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풍순이는 신이 나서 눈밭을 쏘다니느라 바빴고. 그렇게 그 겨울을 더듬더듬 건너가고 있었다. 대관령의 봄은 마음만큼 일찍 도착하지 않았다.
앞대에선 꽃소식이 한창이었지만 대관령엔 새벽에 눈이 내렸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씩 녹기 시작할 정도였다. 한겨울처럼 한밤중에 술에 취해 눈을 치진 않았지만 나는 정류장으로 가는 눈길 위에 여전히 한 걸음 두 걸음 한숨을 찍으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나는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밭둑에 얇게 덮인 눈 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길 위에 쪼그려 앉아 쌓인 눈에 자그마한 구멍이 숭숭 뚫린 밭둑을 들여다보았다.

구멍들 속엔 아주 작은 꽃다지가
노랗게 꽃을 피운 채 들어앉아 있었다.
꽃다지는 내가 아는 봄꽃들 중에서
가장 작은 꽃이었다.
그 꽃다지가 눈을 녹인 것이었다.
겨울밤 내가 술에 취해 무수한 한숨을 토해낸 자리에.
나는 좁쌀 같은 꽃다지 한 송이를 마음에 담고서
시내버스를 탔다.

ABOUT writer
소설가 김도연은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 2008년 허균문학작가상, 2011년 무영문학상, 2013년 강원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아흔아홉』, 『산토끼 사냥』 『마지막 정육점』, 산문집 『눈 이야기』 『영嶺』, 『강릉바다』를 통해 고향 강원도의 추억을 이야기했으며, 최근 소설 『마가리 극장』을 발표하여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