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풀은 설악산 한계령에서 처음 발견된 풀이라 이처럼 이름 붙여졌다. 높은 지대에서 자라는 특성이 우연히 포함된 이름이다. 매자나무과의 식물답게 꽃은 매자나무와 비슷하다. 송이송이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린 노란 꽃이 다발을 이룬다. 2회 연속 세 갈래로 갈라지는 잎은 손가락 모양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모습이 노란 부케를 모아 쥔 4월의 신부 같다. 고지대다 보니 눈이 내리면 만항재는 하얀 카펫이 깔린 예식장으로 변한다. 설중(雪中)에도 살포시 고개 들고 노란 꽃을 피워내는 한계령풀은 청첩장 없이 찾아온 하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른 봄의 꽃들은 서둘러 필 줄 아는 용기와 지혜와 부지런함을 지녔다. 따뜻한 늦봄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그래서 자칫 냉해를 입을 수 있는 이른 봄에 피기로 작정했으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꽃가루받이해줄 매개 곤충을 독점하기 위한 그 전략적 선택에 한계령풀도 기꺼이 동참하는 용기를 냈다. 곤충의 눈에 가장 잘 띄는 노란색 꽃으로 피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용기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이른 시기에 꽃을 피우려면 힘의 원천인 양분을 겨우내 모아둘 수 있는 장치를 갖춰야 한다. 한계령풀은 땅속 깊은 곳에 둥근 덩이뿌리를 마련해 놓았다. 작은 감자 모양의 이 덩이뿌리를 북에서는 메감자라고 부른다. 식용 또는 약용하지만,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덩이뿌리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 옛 학자들은 한계령풀을 한해살이풀이나 두해살이풀로 여겼다. 그래서 한계령풀의 옛 표본을 보면 덩이뿌리가 달려 있지 않다. 콩나물처럼 가느다란 줄기가 땅속으로 30㎝ 이상 내려간 자리에 있다 보니 캐보려고 해도 도중에 끊어먹기 일쑤다.
아마도 그것이 한계령풀의 생존 전략일 것이다. 지상부를 빼앗기더라도 지하부의 메감자만 남아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살 수 있으니까. 덩이뿌리가 발견되면서 그제야 한계령풀은 여러해살이풀로 인정받게 됐다.
용기와 지혜를 가졌어도 부지런함이 없으면 봄꽃 대열에 낄 수 없다. 남들은 다 놀고 쉬는 겨울에도 끊임없이 양분을 축적하고, 삽날조차 들어가지 않는 언 땅을 비집고 올라와야 하며 얼굴 시린 추위에도 끝끝내 꽃 피우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한다. 고지대 봄꽃의 생활사는 길지 않다. 기껏해야 두세 달이다. 한계령풀도 봄 지나면 그들만의 축제를 끝내고 동그란 열매를 맺은 후 지상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한층 더 깊은 땅속에 메감자를 밀어둔 채 다음 해 봄을 기약한다.
용기와 지혜와 부지런함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봄꽃이 될 수 있다. 봄이어서 꽃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다. 계절은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맞이하는 자에게 오는 법이다.

ABOUT writer
이동현은
풀꽃나무 칼럼니스트로 현재 전국을 누비며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을 연구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오감으로 쉽게 찾는 우리 야생화》,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 《아침수목원》, 《나무를 만나다》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이 땅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다양한 풀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