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세자 이황,
정선 산골에 이르다

때는 1506년, 조선의 열 번째 임금 이융(연산군)이 신하들에 의해 폐위 당하고 강화도로 유배됐다. 이융의 맏아들 이황은 하루아침에 끈 떨어진 연 같은 신세가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아버지인 연산군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임금의 자리를 약속받았던 왕세자 이황을 역사는 더 이상 기억하지 않았다. 오직 정선군지에 짧게 몇 줄로 남아 있을 뿐이다.
취적봉 밑에 연산군의 4세자가 폐위되어 이곳에 귀양 와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정선군지 상권, 659쪽)
군지에는 세자들 넷이 정선으로 유배되어 왔다고 하지만 반정에 성공한 이역(중종)실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황(李)은 정선, 이인(李仁)은 수안, 이성(李誠)은 제천, 이돈수(李敦壽)는 우봉에 보내어 모두 관가 근처에 안치하되, 그 담을 높직이 쌓고 항상 문을 잠그게 하다. 폐세자 등이 유배 갈 때 가마 대신 들것에 태우게 하다. 폐세자 이황, 창녕대군 이성, 양평군 이인, 이돈수 등을 사사하다. 폐세자 이황 등을 후히 장례하고자 하였으나 정승들이 막다.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뒤는 가파른 산이요, 오른편으로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옥순봉, 앞으로는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덕우리 도두터는 버려진 폐가만 남아 있을 뿐 잡초만 우거진 곳이었다. 이곳에 며칠 전부터 관아 사람들이 찾아와 폐가를 수리하고 있었다.
“세자 저하가 이곳으로 오고 계시다고? 아니 세자 저하가 궁에 안 계시고 험한 여기는 왜 오신대?”
“신하들이 임금을 쫓아내고 새 임금을 대신 앉혔다고 하더만.”
“뭐라? 그건 삼족을 멸한다는 역모 아닌가?”
“원래 그런 일은 실패하면 대역죄인, 성공하면 일등공신이 되는 것이지.”
이황은 도성인 한양에서 출발하여 들것에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업히기도 하면서 정선으로 왔다. 궁에서 태어나 궁에서만 살았던 세자가 산봉우리와 절벽, 흘러가는 물뿐인 황폐한 곳에 갇힌 것이다. 천연 감옥 도두터에서 세자는 속울음을 삼키며 풀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구슬픈 풀피리 소리는 산봉우리를 넘어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심장을 쥐어짜며 불었던, 짙은 그리움이 녹아있는, 애끓는 소리였다.

천연 감옥 도두터에서 세자는
속울음을 삼키며 풀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구슬픈 풀피리 소리는
산봉우리를 넘어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유진아 작가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로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동화작가로 등단했으며 <아라리 할아버지>로 제1회 정선아리랑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강기희 작가와 함께 정선 덕산기 계곡에서 숲속책방 ‘나와 나타샤와 책 읽는 고양이’를 운영하며 산행하는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있다.

폐세자의 슬픈 운명을 달래던
풀피리

세자를 구경 나온 백성들 사이에서 김팔발이라는 자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덕산기 장수봉 아래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장사 소리를 들었던 인물이었다. 김팔발은 남다른 정의감을가졌기에 불의를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왕을 쫓아냈다고? 그런 패역무도한 짓이 있나?’
김팔발은 빼앗긴 왕위를 원래 주인인 폐세자 이황에게 되찾아주는 것이 올바른 정의라고 믿었다. 김팔발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모았다.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것 역시 불의라 할 수 있소이다. 나와 함께 도성으로 쳐들어가서 역적들을 처단합시다.”
벼슬길을 포기하고 은둔하여 글만 읽던 선비,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소문과 풍문을 옮기던 보부상, 산속 호랑이 사냥꾼 포수, 힘깨나 쓰던 사내들이 김팔발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김팔발은 이들을 규합하여 충의군을 조직하고 정선 관아를 습격했다. 이어 도성으로 진격할계획이었다.
깜짝 놀란 이역(중종)은 김팔발의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관군 일만을 보내고 이황에게 급히 사약을 내렸다. 폐세자가 된 지 23일, 정선으로 유배길에 오른 지 19일 만이었다. 이황이 사약을 받던 날 희한한 일이 생겼다.
“저기 좀 보시오. 저기 흰 까마귀 아니오?”
난데없이 흰 까마귀가 날아와 세자가 머물던 자리 위를 빙빙 돌았다. 흰 까마귀는 세자를 애도하듯 석 달 열흘을 머물다가 날아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백오담(白烏潭), 세자의 풀피리 소리가 넘나들던 봉우리를 취적봉(吹笛峰)이라 불렀다. 취적(吹笛)이란 ‘피리를 불다’라는 의미이다.
거사에 실패한 김팔발은 고향인 덕산기 장수봉 아래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이름 없던 골짜기는 그 후 숨은골 또는 스므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혹자는 김팔발이 금강산으로 갔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역사는 패자에게 냉정하고 무심할 뿐이다. (정선군지 상권, 628쪽)

흰 까마귀는 세자를 애도하듯 석 달 열흘을 머물다가 날아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백오담(白烏潭),
세자의 풀피리 소리가 넘나들던 봉우리를 취적봉(吹笛峰)이라 불렀다.



슬픈 이야기가 깃든
덕산기 추적봉의 봄

덕산기 계곡은 정선 중앙에 위치하여 마치 배꼽처럼 보인다. 평상시에는 너래 반석들이 바싹 말라 있다가도 비만 오면 에메랄드빛 물이 휘감아 내려간다. 그야말로 탄성이 나오는 절경이다. 하지만 그런 비경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계곡으로 들어오는 길도 없는 데다가 그나마 있던 길도 쏟아지는 비가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정도의 업을 쌓은 사람만이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다.
덕산기에 내리는 봄비는 조금 더 특별하다. 봄비는 겨우내 단단하게 붙잡혀 있던 땅속 얼음을 야금야금 핥아서 녹여버린다. 사막 같던 덕산기에 빙하보다 차갑고 투명한 물이 넘실넘실 흐른다. 내리는 비에 녹은 얼음까지 더해져 계곡물은 순식간에 불어난다. 아침에 나섰다가 저녁이 될 때까지 제 자리에 돌아오지 못하기도 한다.
복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탈출하여 잠시라도 은둔과 고립을 원하는가? 봄비가 예보되면 취적봉에 오를 일이다. 풀피리 꺾어 불며 추적추적 걷다 보면 덤으로 덕우 8경을 눈에 담을 수도 있다. 취적봉에서 내려오면 서둘러 덕산기로 들어오라. 그대 걷던 흔적을 봄비가 사부작사부작 지워 없애고 세상과 홀연히 단절시켜 줄지도 모를 일이다.

INFORMATION_ 정선 취적봉
위치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덕우리 건너편 가는 길 덕우삼거리에서 하돌목교에 이르면 취적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덕우삼거리-하돌 목교-취적봉-강릉유씨 묘-덕산기 계곡-덕산1교)가 있다. 취적봉 등산로 끝에서 만나는 덕산기 계곡은 깨끗한 물과 층암절벽, 낙엽송지대와 바위너래지대가 이루는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유명하다.
문의 1544-9053(정선군 관광안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