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워 쑤어낸 메밀묵집을 목판에 가득 부어 식혀내면

중목재 밑 사제산 기슭에서 나물을 뜯어 먹고 살던 서정분씨네는 겨울에 갑자기 다수로 이사 왔습니다. 다수리 길가 집에 살던 상호 씨가 이사를 가서 앞도 뒤도 재지 않고 왔습니다. 길가에 집도 못생겼지만, 아들 학교도 가깝고 집값도 싸서 다행입니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이웃에게 변변히 인사도 못하고 삽니다. 나물이나 뜯어 먹고 메밀이나 조, 옥수수, 잡곡 농사나 조금 지어 살다 갑자기 이사하니, 있는 것이라고는 나물뿐이어서 어떻게 사람들을 부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오월 초순쯤 대추나무 잎이 피기 시작하면 큰 산에 나물이 난다고 합니다. 봄이 되자 이웃 사람들은 정분 씨네 보고 나물 뜯으러 같이 가자고 하며 친절하게 굽니다. 괜히 주눅들어 있었는데 이때다 싶습니다. 이웃들에게 나물이 많은 곳도 가르쳐주고 얼음골에 가서 얼음을 뜯어다 시원한 감태메밀묵사발을 만들어 대접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감태묵(메밀을 껍질째 불려서 맷돌에 갈아 걸러서 만드는묵)을 준비합니다. 서정분 씨는 한잠 자고 일어나 어제 담가놓았던 메밀을 갑니다. 아주 조금씩 떠 넣으며 싹싹곱게 갈아야 메밀묵집(묵을 만들기 위해 곡식을 물과 함께 갈아놓은 액체상태의 재료)이 많이 나옵니다. 메밀 한 말을 갈자면 한나절이 족히 걸리기 때문에 밤새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 갈아진 메밀은 먼저 굵은 얼레미(구멍이 큰 망)로 거릅니다. 묽어질까봐 물을 조금 붓고 조심해서 거릅니다. 시꺼머스름한 묵집이 줄줄이 흘러내립니다. 시꺼먼 메밀껍질이 많이 나옵니다. 먼저 걸러진 묵집을 다시 한번 고운 체로 걸러줍니다.
묵거리는 삼베자루에 담아 물을 붓고 여러 번 치대어 짭니다. 가마솥 가에는 물동이도 갖다 놓고 마른 가루도 갖다 놓고 묵을 쑤기 시작합니다. 만일 하는 도중에 묽거나 되면 가루를 더 넣든지, 물을 더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큰 가마에 맹물을 조금 붓고 끓입니다. 맹물이 끓기 시작하면 후지물(묵거리를 맨 나중 거른 물)부터 붓고 끓으면 먼저 걸러놓은 아이물(묵거리를 먼저 거른 물)을 휘휘 저어 두어 번 나누어 부으며 한 방향으로 부지런히 저어 줍니다. 시꺼머스름한 묵집이 마알간1 색으로 변하고 풀떡풀떡 튀어 오르며 끓습니다. 얼굴을 멀리하고 조심해서 젓는데도 되직한 묵집이 풀떡 뛰어 오른쪽 손등에 철썩 붙었습니다. “앗, 뜨거워!” 찬물동이에 손 한번 푹 집어넣었다 꺼내니 손등이 새빨개졌습니다. 손등이 얼얼하게 쓰리지만 그대로 묵을 젓습니다.
한참을 저어 주다가 한 주걱 푹 떠서 흘려보아 쭈르륵 흐르면 묽은 것이고 천천히 뚝뚝 떨어지면 농도가 맞는 것입니다. 불을 줄이고 한참을 은근히 더 끓여줍니다, 불을 아주 치워 버린 다음에도 잠깐 더 저어 줘야 합니다. 가마가 달궈져 있어서 그냥 놔두면 많이 눌어붙습니다.
뚜껑을 덮어 뜸을 들입니다. 이때 뜸을 잘 들이지 않으면 묵이 흐슬흐슬 부서지니 조심해야 합니다. 한 말 들이 두부 목판에 삼베보자기를 깔고 바가지로 묵을 퍼붓습니다. 목판 가득 까무잡잡한 감태묵이 먹음직스럽고 대견해 보입니다. 꼬미(고명)로 쓸 김장김치도 꺼내다 쫑쫑 썰어 들기름 넣고 깨보생이(깨소금), 마늘, 듬뿍 넣고 무쳐서 김장독 안에 넣어놓습니다. 모든 준비가 얼추 끝났습니다.

정성스레 차려낸 시원한 묵사발에 마음이 열리고

나물을 뜯으러 사람들이 왔습니다. 남자들이 지게에 큰 삼베보자기와 밥보자기를 매어 달고 길게 줄을 서 희뿌연 하일 골짜기를 걸어갑니다. 여자들이 다래끼를 들고 뒤를 따릅니다. 얼마나 일찍부터 왔는지 사제산 밑까지 오니 날이 훤히 밝아옵니다. 열 명은 산세를 잘 아는 정분 씨를 따라서, 열 명은 남편을 따라서 다른 골짜기로 흩어져 뜯기로 합니다. 깊은 사제산 골짜기를 자꾸 올라가다 보면 나중에는 얼음골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올봄은 날씨가 지정거려2 나물이 아주 흐들스럽게3 많이 났습니다. 특히 곤드레가 흐드러졌습니다. 곤드레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모습이 술 취한 사람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참나물, 곰취, 도둑취, 이밥취, 밥취, 떡취, 싸리나물, 딱쭉이, 얄가지…. 나물이 지천입니다. 땅이 살이 깊어 크고 실한 더덕도 힘 안들이고 캘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얼음을 보자 “어, 진짜 얼음이 있네.” 하고 놀랍니다. 얼음골에는 큰 바위 밑으로 허연 얼음이 엉들멍들4 하게 꽉 차 있습니다. 무거운 나물 보따리를 이고 지고 오느라 뻘뻘 흘린 땀이 쏙 들어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정분 씨 남편은 곡괭이로 얼음을 크게 한 덩어리 깨서 가져온 무명 보자기에 싸고, 나물 보따리를 헤치고 그 복판에 넣어 지게에 지고 내려옵니다. 다른 사람들도 거 곡괭이 좀 달라고 하여 큰 얼음 덩어리를 나물 속에 넣고 이고 지고 옵니다. 한참을 오다 보니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모두 정분 씨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묵을 쳐, 먹고 가기로 합니다. 다들 분주해졌습니다. 정분 씨는 독에 묻어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퍼다 물과 동치미 국물을 반씩 타고 시어머니가 물려준 막걸리 식초와 설탕을 타서 새콤달콤하게 국물을 만듭니다. 누구네는 묵을 채칩니다. 누구네는 자기 보따리에서 달래를 꺼내 씻어다 달래 간장을 만들고 재빠르게 참나물도 삶고 취나물도 삶아 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음이 녹기는 했지만 꽤 남아 있습니다. 큰 얼음 덩어리를 작은 도끼로 쪼개서 절구에 넣고 잘게 빻아서 동치미국물에 넣습니다. 묵사발에 아낌없이 국물을 붓고 김치 꼬미도 얹고 달래 간장을 듬뿍 타서 먹습니다.
“으~ 시원타, 아 시원하다. 아, 이 맛이야.” 하며 야단스럽게 먹습니다.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합니다. “여보게, 입맛이 없던 차에 아주 잘 먹었네.” “여보게, 내가 평생 잘해 줌세. 누가 자네한테 찍자를 붙거든(시비를 걸거든) 말하게. 내가 다 막아주겠네.”
김 씨네 아주머니는 정분 씨의 양손을 꼭 잡고 “아이구, 어떻게 얼음 묵사발을 다 했어.” 하며 서정분 씨의 화상입은 손에 허물이 다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흔듭니다.

전순예 작가는
1945년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산골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작가를 꿈꿨으나, 먹고사느라 바빠 꿈을 접어두었다가, 환갑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해 먹던 소박한 음식과, 함께 나누어 먹던 사람들, 풍성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떠올리며 쓴 글은, 우연한 기회에 ‘강원도의 맛’이란 칼럼으로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되었다. 지난 2년간 연재되었던 작가의 글은, 단행본 『강원도의 맛』(송송책방, 2018)으로 만날 수 있다.
1 맑은 / 2비가 자주 와서 / 3흐드러지게, 푸지게, 탐스럽게 / 4평창 지역의 토속어, 울퉁불퉁의 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