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쏘아 올린 영월의 별

마당에 어떤 꽃들이 피는지 그는 단번에 말하지 못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수없이 많은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는 까닭이다. ‘볼 때마다 처음 같은’ 꽃들이 머잖아 미술관 곳곳을 환한 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그 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날들. 굳이 묻지 않았는데도, 그의 설렘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꽃길’을 걷고 있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까르셀에서 열린 <SALON DES BEAUX ARTS 2018>에서 조각부문 금메달을 수상한 것이 지난해 12월의 일. 프랑스국립미술협회 정회원으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그에게 최고상의 영예가 마침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작 평온하다. 잔잔하고 담담하게, 자신이 피운 꽃을 음미 중이다.
“<SALON DES BEAUX ARTS>는 매년 12월 프랑스 대통령의 후원으로 열리는 행사예요. 1861년 프랑스국립미술협회가 창설됐고, 1890년 로뎅과 그의 동료작가들이 이 살롱을 마련해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오랜 전통을 가진 대규모 살롱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건 정말 영광이에요. 하지만 저만의 실력으로 받은 상은 아닌듯해요. 제 작품 <Who am I?>는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자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에요. 어느 때보다 그 질문이 필요한 시대잖아요. 거기에 부합했기 때문에 상이 주어진거라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문화 위상이 높아진 것도 수상에 도움이 된 것 같고요. 여러모로 운이 좋았어요.”
지나친 겸손은 오만의 한 단면이지만, 냉철한 겸손은 성장의 한 과정이다. 조각가의 길을 걸어온 지 50년이 훌쩍 넘는데도, 성찰을 바탕으로 한 그의 성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금메달 수상이 아니라도 2018년은 그에게 최고의 한 해였다. 지금까지 50여 회의 개인전과 400여 회의 초대전을 가진 그는 지난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전시회를 가졌다. 광주과학기술원(3월~4월)을 시작으로 양평 Gallery WA(6월~12월), 영월문화예술회관(9월~10월), 동해문화예술회관(11월~12월)까지 한 해의 대부분을 <Who am I?> 전시에 할애했다. 매 전시 때마다 작품을 새로 출품했다. 작년 한 해 제작한 작품만 약 200여 점. 하루 8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리면서, 청춘보다 더 청춘 같은 열정을 불살랐다.
“내년이면 이곳에 둥지를 튼 지 만 20년이 돼요. 처음 여기로 올 때 서울과 지역의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것에 큰 목표를 뒀어요. 근데 막상 영월에서 제 개인전을 연 건 지난해가 처음이에요. 80점의 조각품과 1점의 설치작품으로 한 달 동안 군민들과 만나는 데 정말 흐뭇하더라고요. 그때 전시한 작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살롱에 출품했어요. 그게 수상으로 이어져서 기분이 더 좋았어요.”

작년 한 해 제작한 작품만 약 200여 점.
하루 8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리면서,
청춘보다 더 청춘 같은 열정을 불살랐다.



문화 소외 지역에 예술의 향기를 심다

1980년대 후반까지 그의 작업실은 서울에 있었다. 먼지도 날리고 소음도 심하다는 주위 사람들의 지적에 경기도 이천으로 공간을 옮겼다가, 1990년대 후반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향 산청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곳에 다녀간 그는 그 즉시 마음을 빼앗겼다. 폐교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월 봉래초등학교 삼옥분교. 바로 옆에 봉래산이 우뚝하고, 가까이에 동강이 유유했다. 산청의 작업실을 후배들에게 내주고,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야외무대도 만들고 연못도 조성하면서 1년간 미술관을 꾸몄어요. 지역에 문화의 향기를 심기 위해 이곳에 온 만큼 ‘영월군민의 날’인 2000년 11월 2일에 개관했죠.”
과거 학교운동장이었던 야외조각공원엔 17개국 100여 점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철철이 달라지는 자연이 또 하나의 미술품이기에, 같은 작품인데도 마당의 변화에 따라 그 느낌이 매번 달라진다. 실내전시실도 갈 때마다 새롭긴 매한가지다. 70여 개국 3,000여 점의 작품이 그때 그때 ‘교환’ 전시되는 까닭이다. 개관 이듬해부터 국내외 저명한 조형 예술가들을 초대해 국제조각심포지엄을 개최했던 그는 몇 년 뒤 영월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동강 New Art Valley Project’라는 이름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꾸준히 마련해왔다. 모두 11번에 이른다. 오픈 작업실을 통해 작품이 탄생 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예술가와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데 크게 일조했다.
“외국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같이 세미나를 여는 과정은 그 자체로 큰 축복이에요. 그들이 남기고 간 작품이 미술관 곳곳에 있어요. 그 작품들을 볼 때마다, 화장실 갈 새도 없이 함께 작업하던 그 친구들이 그리워요. 여러 사정으로 최근 몇 년간 휴업상태였는데, 20주년인 내년엔 외국 작가들을 초청해 심포지엄을 다시 해볼 생각이에요.”
국제조각가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국내외를 비롯한 국제조각심포지엄 참여횟수만 무려 46회에 이른다. 오래해온 ‘품앗이’가, 심심산골 영월에서 외국 작가들과의 협업을 가능케 한 배경이다. 이 땅에 둥지를 튼 뒤로 그는 영월 곳곳에 자신의 조각품을 설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월스포츠파크, 동강시스타, 영월김삿갓문학관(시비조형물) 등 환경조형물이란 게 전무했던 영월에 조각이라는 이름의 ‘문화’를 하나씩 심어나갔다. 어디 영월뿐일까. 부여구드레조각공원, 김천강변조각공원, 생초국제조각공원 등 국내 여러 곳의 조각공원이 그의 기획과 감독으로 조성됐다. 프랑스낭트 그랑블로트로공원 내 동양조각공원엔 그가 제작한
대형조각품 <영원한 우정의 샘물>이 서 있다. 모두가 쉬어가는 공원에 예술의 향기를 심는 일. 눈부신 그 일이 그를 행복하게 한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어요. 학연도 지연도 없다는 약점이 외려 세계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돼준 것 같아요. 해외 활동을 하게 된 건 1970년대 후반 덴마크대사를 만나면서예요. 덴마크를 시작으로 프랑스, 아르헨티나, 스웨덴, 벨기에, 브라질 등 세계 속 친구들과 끊임없이 교류해올 수 있었어요.”
외로움은 자유로움이 되고 자유로움은 풍요로움이 됐다. 약점이 ‘약(藥)’이 돼준 셈이다.

모두가 쉬어가는 공원에 예술의 향기를 심는 일.
눈부신 그 일이 그를 행복하게 한다.

있음에서 없음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그는 주변의 자연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는 작가다. 강가나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과 나무들. 그것들이 자신에게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달라고 속삭여오면, 돌과 나무의 본래 형태를 최소한만 변형해 작업을 한다. 그의 작품에서 간결함이 돋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는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예술가다. 있음에서 없음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바꾸는 것을 작업의 본질로 삼는다. 2007년 파리 그랑팔레에서 처음 선보인 <나는 누구인가?> 연작은 바로 그 ‘빼기’의 대명사다. 무에서 유만을 창조해온 인류문명사가 그는 못내 안타깝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그것이 인간 소외와 정체성 상실로 이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작업이 그래서 필요해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자체가 위대한 창조니까요. 모든 인간은 순수하게 태어나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자연과 교감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연과 교감하기 위함일까. 그가 조각한 인간 군상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벙긋 벌리고 있다. 돌의 본래 형태에 최소한의 손길만 가한 탓에, 뾰족한 코와 동그란 입이 유난히 도드라진다. 그 표정이 퍽 생생하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같은 것이 전혀 없다. 한 작품 한 작품에 저마다의 숨결이 고스란하다.
“입 벌린 인물을 처음 생각한 건 군 복무 시절, 청소년회관에서 자원봉사하면서예요. 그때 만난 지적장애아들이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이 한없이 맑고 순수해 보였어요. 사람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면 입을 벌리게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벌린 입이 하늘을 향하기 시작한 건,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도덕’에도 길이 있다면, 그 길의 맨 앞에 ‘예술’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1965년 원주 가톨릭센터에서 첫 전시회를 연 이래 그가 천착해온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행위도 그것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이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누군가 묻는다면 단연코 인간이 먼저라고 말하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보다 먼저라고 생각하니까요.
예전엔 성격이 매우 급했어요. 근데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조각으로 표현하면서 점점 유순해지더라고요. 젊었을 땐 돈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제일 좋아요. 이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가길 바라요.”
그는 오늘도 사람을 기다린다. 누군가 찾아오면 버선발로 달려나가 반겨주고, 누군가 돌아가면 오래오래 손 흔들며 떠나보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할아버지가 아이처럼 웃으며 저기 서 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까르셀 <살롱 데스 뷰억아츠 2018(SALON DES BEAUX ARTS 2018)>에서 조각 부문 최고상 금메달을
수상한 박찬갑 국제현대미술관장의 작품. <Who am I?> 연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박찬갑 관장은 지난 해
처음 영월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80점의 조각품과 1점의 설치작품으로
영월 군민들과 만났던, 그에겐 뜻깊은 전시였다.
그때 전시한 작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살롱에 출품했고,
공교롭게도 수상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