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의 서울살이 끝에 돌아온 고향, 태백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주하게 되었고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각인 되어버린 곳. 태백과 나의 인연은 36년 전 시작됐다. 그 시절 태백은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말 그대로 ‘탄광촌’으로 불렸다. 하지만 어린 나는 이곳이 무엇으로 불리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학교를 마친 후 동네 친구들과 딱지 치고 숨바꼭질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엔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 역시 친구들과의 추억 속에 작은 조각으로만 남아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 때 이후로 친구들이 하나둘 이곳을 떠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들과 눈물로 작별했던 그 시절 기억이 흐릿한 추억으로 지금껏 남아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스무 살에 대학에 진학하면서 태백을 떠나 이곳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십 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드디어 태백으로 돌아오던 날. 멀리 태백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자동차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천천히 고향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불과 몇 시간 전 보았던 빌딩 숲이 사라지고 높은 산과 푸른 숲이 가득 펼쳐졌다. 그렇게 태백과 나의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
석탄 산업이 쇠락하고 폐광으로 인해 강원도 경제가 불황에 이르자, 비경제 탄광의 정리와 경제성이 높은 탄광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1989년 정부가 취한 석탄 산업 조정 정책을 말한다.

소소한 재미를 일굴 수 있는 곳

나는 태백으로 돌아와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 동네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니어브릿지(Near Bridge)’란 카페 이름을 정하는데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뜻을 풀이하면 ‘다리 근처’ 카페 정도가 되는데, 실제로 운영하는 카페 근처에 다리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다리’의 의미가 남달라서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그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친구들이 있는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내가 친구들과 추억을 쌓던 놀이터였다. 여러 가지 상호명을 목록에 두고 고민한 끝에 현재의 이름을 선택하게 된 건, 그만큼 나에게 그 다리의 의미가 특별했기 때문인 것 같다.
태백은 예전 탄광촌이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지자체는 탄광촌이라는 어두운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산소도시태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그밖에 더욱 특별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요즘 태백에 정착해 살고자 타지 청년들이 이곳으로 이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특별한 삶을 살겠다는 계획을 갖고 태백을 찾는 청년들은 물론 아직 많지 않지만 그동안 이곳을 떠나기만 했던 청년들이 태백에 터전을 일구고 있다는건 생소하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태백을 찾아온 타지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여기에선 넉넉한 수입을 벌며 잘 살 수 없을지는 몰라도 재밌게 살 수는 있어요.”
처음 태백은 탄광을 직업 삼아 힘든 노동의 대가로 잘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탄광촌을 이루어 생긴도시였다. 하지만 이제 태백에는 소소하지만 재미있게 살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있어 앞으로 태백이 소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촌’ 이기를 기대해 본다.

황다운 대표는
3년 전 태백 장성의 오래된 약국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어 ‘니어브릿지’라는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스스로 ‘낯가림이 심한 흔치 않은 시골 카페’라 부르는 이곳에서 커피를 만들며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