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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머니멀>이
    하이원에서 발견한
    공존의 해답,
    희망의 풍경

    • WRITE 이지연
    • PHOTO MBC<휴머니멀>, 아자스튜디오
  • 지난 1월 방송된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Humanimal)>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해법을 함께 모색하자고 말을 걸었다. 마지막 5부 ‘공존으로의 여정’ 편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훼손되었지만, 다시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복원되고 있는 하이원 하늘길 운탄고도, 동원탄좌 일대가 ‘공존의 희망 모델’로 등장했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할 것들에 대하여

휴먼(Human)과 애니멀(Animal)의 합성어인 <휴머니멀>. 이 제목에는 다큐멘터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모두 담겨 있다. <휴머니멀>은 자신의 쾌락과 이권을 위해 동물들을 사냥하고 길들이는 인간집단과 이러한 동물들을 인간의 손으로부터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또 다른 인간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소개하는 여정이었다. 제작진이 1년간, 4개 대륙 10개국을 돌며 촬영해 온 화면에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꽤 많았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래들을 무참히 살상하고,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며 어린 코끼리를 쇠꼬챙이로 찌르고 때려 길들이며, 쾌락의 도구 삼아 잔혹한 사냥을 행하면서도 지역사회를 위한다는 명목을 자랑스럽게 들먹이는 트로피 헌터(Trophy Hunters)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휴머니멀>은 인간의 잔혹함만을 말하진 않았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국경없는 코끼리회’,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생태공원’ 등 인간에게 상처받은 동물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생을 바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존’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공존의 첫걸음은 각자의 영역을 지켜주는 것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공존은 저 동물을 이용해 무언가를 하겠다는 욕심을 비워낸 마음가짐에서 시작하는 지도 모른다’, ‘멸종을 넘어 공존으로 가려는 노력. 그것은 끊임없이 조율하고 조정하는 과정이다’라고 <휴머니멀>은 말한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을 희망이 남아있다’라고 강조하는 <휴머니멀>은 여러 나라를 돌고 돌아 하이원의 자연 속에서 ‘공존의 해법’을 발견했다. 한때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훼손되었으나, 이를 복원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다시금 생명력을 회복 중인 하이원 일대 폐광지역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 동원탄좌
폐석지를 숲으로 복구하기 위한 노력의 선물,
무릉도원길 자작나무 숲

무릉도원길 자작나무 숲은 4ha(40,000㎡)에 걸쳐 대대적으로 자작나무를 조림한 곳이다. <휴머니멀>에 프레젠터로 참여한 배우 박신혜와 류승룡이 거닐었던 자작나무 숲에는 청명한 바람이 불었고, 간간히 새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올라간 새하얀 자작나무의 자태는 한 폭의 그림처럼 화면을 가득 채웠다. 폐광지역이었던 이곳에 자작나무를 식재한 이유는 빗물에 씻겨 내려갈 수 있는 망간, 카드뮴 같은 중금속을 흡착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게 산림학 박사 전영우 교수의 설명이었다. 폐석지를 숲으로 복구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자작나무 역시 단단히 뿌리 내리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숲이 복원된 후 살 곳을 잃었던 동물들이 다시 돌아와 살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폐석탄이 쌓여 만든 검은산 위에 돋은 희망,
동원탄좌

석탄산업이 최고 전성기를 달렸던 1970~80년대, 종업원이 5천 명이 넘는 동양에서 가장 큰 민영탄광이었던 옛 동원탄좌를 배우 박신혜가 찾았다. 사북역 인근에 위치한 동원탄좌에는 석탄을 캐낸 흔적, 캔 석탄들을 나르던 석탄차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캄캄한 갱도 안에서 흐르는 물을 정수해 재사용하고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갱도 밖, 드론으로 촬영하지 않았으면 실체를 알지 못했을 검은산이 보였다. 그 산은 폐석탄들을 계속 쌓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처럼 만들어진 적재소였다. 생명이 자랄 것 같지 않은 검은산 위에서도 나무들은 제 키를 키우고 있었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자연은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검은산 위로 돋아난 나무, 풀, 꽃들은 하이원에서 찾은 공존의 가능성이자, 희망이었다.

하늘길에서 배우 박신혜 (왼쪽)하늘길 운탄고도 (오른쪽)해발 1,340m 하이원탑
석탄차가 다니던 길이 생명이 숨 쉬는 길로,
운탄고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길, 운탄고도. 백운산과 두위봉 7~8부 능선, 해발 1,100m 안팎을 따라 이어진 임도인 운탄고도는 폐광 이후 하이원 하늘길을 조성하며 ‘높은 산에 위치한 길’,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고원의 길’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석탄차가 다니던 그 길에는 하이원의 대자연 속에서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177 갱도와 도롱이 연못을 만날 수 있는 운탄고도에는 갖가지 야생화와 동·식물이 자란다. 하늘길을 조성하지 않았다면 발을 딛지도, 보지도 못했을 풍경. 사람들의 복원 노력과 관리로 다시 자연의 일부로 숨 쉬게 된 운탄고도에는 새 생명들이 움트고 있다.

배우 박신혜가 머물렀던
고원숲길과 하이원탑

스카이 1340(곤돌라)을 이용하면 당도하는 하이원탑. 그곳에서 바라본 백운산 자락엔 온통 가을이 물들어 있었다. 겹겹이 이어진 산세, 울창한 숲을 이룬 풍경은 그곳이 동양 최대 탄광지역이었다는 것을 잊게 했다. <휴머니멀> 1부 ‘뜻밖의 여정’ 편에 색색의 단풍으로 물든 백운산 풍경이 잠깐 등장했지만, “우리나라인 줄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미국, 아프리카에서 촬영해온 광활한 대자연들 사이에 끼워 넣어도 하나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멋진 풍광을 자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자연을 그냥 얻을 수는 없다고, 끊임없이 보존하려는 노력을 행할 때 자연도 우리 곁에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이원 리조트 하늘길, 휴머니멀 루트를 소개합니다

하이원 리조트를 방문한 배우 박신혜와 류승룡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걸었던 루트를 소개합니다.

Route A [ 총 3시간 10분 소요 ] START 마운틴 스키하우스 출발 >>> 밸리허브 해발 1,004m >>> 2.5km, 40분 소요 자작나무 숲 >>> 5km, 1시간 30분 소요 하이원탑 해발 1,340m 전망레스토랑에서 명품 돈까스 즐기기 >>> 크리스탈 1340(투명 곤돌라) >>> 2.5km, 20분 소요 마운틴 콘도 도착
Route B [ 총 2시간 20분 소요 ] START 마운틴 스키하우스 출발 >>> 크리스탈 1340(투명 곤돌라) >>> 2.5km, 20분 소요 >>> 하이원탑 해발 1,340m >>> 1km, 20분 소요 주목 군락지 1km, 20분 소요 고원숲길 2 >>> 1.5km, 25분 소요 도롱이 연못 >>> 고원숲길 1 >>> 3.7km, 1시간 소요 마운틴 콘도 도착
  • Interview “불편한 진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
    <휴머니멀> 김현기 PD
  • 2001년 MBC에 입사해 많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던 김현기 PD는 평소 관심 가졌던 인간과 동물의 접점에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 <휴머니멀>을 기획했다.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그의 제안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충격으로 다가온 세실의 죽음

    김현기 PD는 <휴머니멀>을 준비하면서 수사자 세실을 떠올렸다. 세실은 덩치가 크고 갈기가 아름다워 짐바브웨 국립공원의 스타로 불렸던 사자다. 그러나 지난 2015년 사냥을 오락으로 여기는 트로피 헌터들이 국립공원 경계지역으로 수사자 세실을 유인해 사냥하면서 죽음을 맞았다. 그 기사를 보고 적잖이 충격 받았다는 그는 그때 ‘트로피 헌팅’을 처음 알게 됐고, <휴머니멀>을 기획하며 그들의 실상을 담아야겠다고 얼개를 짰다. 마침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후라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생태계의 지배자로 군림했는지, 동물보호단체들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관련 주제들을 하나씩 엮어 나갔다.“
    하필 첫 촬영이 잠비아에서 트로피 헌터들의 하마 사냥을 찍는거였어요. 그들의 모습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데 눈앞에서 사냥하는 걸 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걸 자랑스럽게 떠들고, 지역사회 경제효과를 창출한다는 논리를 갖다 대는 걸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들었죠.” 잠비아에서 받았던 충격과 마음의 상처는 이어진 보츠와나 촬영에서 치유됐다. ‘국경없는 코끼리회’ 마이크 체이스 박사를 만나 선한 기운에 감화되었다. 치앙마이 코끼리 생태공원 운영자인 차일러트 여사를 보면서도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무차별적으로 해하는 것도, 어떤 이익을 바라지 않으며 운명처럼 동물을 지키는 것도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반된 두 집단을 보며 느꼈다. “동물을 살리고 죽이는 권한이 다 사람에게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모든 것들이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동물을 죽이는 것도 돈 때문이지만, 그 동물들을 살리고 보호하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거든요. 이런 현실이 좀 아이러니하죠.” 김현기 PD는 쉽사리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동물 살상의 역사를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피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며 “동물들의 무차별적인 죽음을 안타까워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한다면 공존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라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 인간의 관심과 노력이 만든 복원의 땅

    “국내 이야기를 마지막에 꼭 넣고 싶었어요. 돌고래 제돌이 이야기를 통해 제주도 바다를 누비는 돌고래 떼와 해녀들의 공존을 이야기했다면 백운산 자락, 하이원 리조트를 중심으로 이어져 있는 폐광지역의 복원된 모습을 통해 인간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자연은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김현기 PD는 ‘산업발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고 방치되었던 백운산 폐광지역이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복원력이 합해져 동물이 돌아올 수 있는 터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데 방점을 두었다. “촬영을 위해 하이원 리조트 관계자분들에게 자료를 많이 요청했어요. 저 역시 스키 타러 온 적은 있지만 리조트 내에 폐광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거든요. 그만큼 숲이 우거져 잘 보이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그만큼 무관심했다는 얘기죠. 촬영할 때 하이원의 슬로프나, 리프트를 화면에 걸지 않아서 저희가 촬영한 곳이 하이원 리조트 바로 옆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알지 못했을 거예요. 박신혜 씨가 데크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 역시 하이원탑에서 촬영한 건데 세계 어느 대자연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저희 제작진도 놀랐습니다.” 복원된 숲에 동물들이 찾아들고, 폐석재들을 쌓아둔 곳에 나무가 자라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김현기 PD에게 <휴머니멀>은 새로운 도전과 약간의 전환점과 약간의 번아웃을 준 작품이다. 그의 표현대로 ‘작년 한 해를 다 갈아 넣은 작품’이다. 여러 가지 힘든 과정 속에서도 PD로서 만들고 싶은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다는 건 ‘복 받는 일’이라는 김현기 PD. 그는 지면을 빌어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하이원 리조트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