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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을 잡고 다함께,
    빛을 향해 앞으로

    정선 아트스튜디오
    ‘엉성’ 진주영 대표

    • EDITOR 박미경
    • PHOTO 남윤중
  • 문을 열고 손을 내밀며 틈을 좁혀간다. 작업실을 개방해 주민들을 환대하고, 서로 소통하며 함께 성장해간다. 잊혀가는 탄광촌 문화를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으로 기록해온 진주영 작가가 고향 정선에 아트스튜디오 를 낸 것은 지난해 4월의 일이다. 벌써 일 년이 다 돼 가지만, ‘엉성’이란 공간에 완성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맘을 나누고 꿈을 섞으며 길을 같이 낼 뿐이다. 머나먼 그 길에 벌써 꽃이 피어있다.
진주영 _ 시간의 땅_ 장지에 먹과 펜, 41 X 31cm
하잘것 없는 점들로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다

그는 검은 밑바탕을 쓴다. ‘하얀 캔버스’라는 관용구가 무색하게, 검은 먹과 검은 물감을 입힌 장지 위에 하얀 먹을 점점이 찍어가며 작업한다. 말 그대로 한 점 한 점이다. 작디작은 점들을 각기 다른 크기로 찍어가면서, 폐광촌의 깊디깊은 절망이나 맑디맑은 희망을 형상화해간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그 방식에 대해 그의 지인들은 ‘미련하다’는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그는 보잘것없는 별들이 모여 찬란한 은하를 이루듯, 하잘것없는 점들이 쌓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과정이 참 좋다. 어리석은 노인은 큰 산을 옮기고(愚公移山), 미련한 그는 ‘큰 그림’을 그린다. “점을 찍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석탄이 ‘가루’이기 때문이에요.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어요. 고향집에 쉬러 왔는데 엄마가 베란다 창틀을 계속 닦으시더라고요. 석탄가루가 날려서 수시로 닦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요. 그 순간 마음이 출렁였어요. 폐광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석탄가루들은 우리 곁에 아직 남아있었던 거예요.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이곳의 역사며 문화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싶어졌어요.” 고향의 문화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화가로서의 첫 번째 변곡점이라면, 고향으로 아예 돌아온 것은 두 번째 전환점이다. 같은 작업도 ‘안으로 들어오니’ 확실히 다르다. 직접 보고 몸소 겪으니 그 깊이가 남다르다. 성장한 것은 작품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민둥산이 가까운 이곳에 아트스튜디오를 낼 때, 그는 작업실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그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폐광촌 문화를 제대로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해, 작업실의 커튼을 내리고 홀로 작업하던 과거와 결별한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미술교육이 아닌 ‘미술놀이’를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1:1 그림 수업도 했고, 지역 청년들과 함께 ‘빛을 이용한 드로잉’ 체험도 진행했다. 서툴면 서툰 대로 모두들 신나게 놀다 갔다. 찾아오는 이들이 기대만큼 많진 않지만, 그는 오늘도 유쾌하게 체험자를 기다린다.

진주영 _ 거름_ 석탄채색 117 X 91cm
엉성한 이들의 소중한 사랑방

“이 공간이 ‘엉성한 이들의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엉성한 사람들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에 마음껏 도전하는 경향이 있어요. 창의성은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미술을 잘하려는 분들보다, 미술로 행복해지고 싶은 분들이 언제든 편하게 오셨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연탄이나 석탄을 재료로 그림수업을 해보려 해요. 제가 직접 해보니, 먹과는 또 다른 느낌의 작품이 나오더라고요. 우리 지역의 특성을 살린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어요.” ‘엉성’은 환대의 공간이다. 그냥 들어와 마냥 있다 가도 된다. 벽에 걸린 작품들을 멍하니 구경해도 좋고,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봐도 괜찮다. 이곳이 작업실과 전시장과 체험교실을 넘어, 이웃들의 소중한 ‘사랑방’이 되기를 그는 소망한다. 홀로 꾸민 이 공간엔 재활용한 물건들이 즐비하다. 누군가 내다 버린 소품들을 하나하나 주워와 구석구석 예쁘게 배치해 놨다. 낡고 오래되고 쓸모없는 것들이, ‘엉성’이란 사랑방을 더없이 풍성하게 한다. “결과물뿐 아니라 과정도 주민들과 나누고 싶어요. 중간중간 그분들의 피드백을 받아 가면서, 작품에 반영해 나가려 해요.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톡톡히 누릴 생각이에요.” 주민만이 아니다. 그는 현재 지역의 다른 작가들과 활동가를 수시로 만나, 도시재생 관련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이다. 지역만의 색깔과 패턴을 같이 연구하면서, 거리의 조형물이며 상가의 외관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 주민을 설득하는 일도 작가와 활동가가 직접 한다. 소통 없는 변화는 이곳에 없다.

이제는 돌아와 이웃 앞에 선

그가 자란 곳은 정선 도사곡이다. 계곡이 있어 놀이가 풍성했다. 봄엔 거기서 올챙이를 잡고, 여름엔 그곳에서 다이빙을 했다. 겨울엔 동네 언덕길에서 눈썰매를 타며 놀았다. 버려진 비료포대 하나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시절이었다. 도시에서 성장한 그의 친구들은 그의 유년을 믿기 어려워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1993년생인 자신에게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게 그는 못내 뿌듯하다. “할아버지가 광부로 일하셨어요. 할머니도 석탄 선별작업 같은 걸 하셨고요. 폐광 후에 태어났지만,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서 그 문화가 낯설지 않아요. 실은 탄광촌의 산증인이신 조부모님과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요. 범인 몽타주 작업에 비교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두 분의 증언을 토대로 탄광촌 묘사를 세세히 해보고 싶어요. 광부의 가족들이 겪은 어려움도 표현하고 싶고요.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위대함을 저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담아내야죠.” 정선보다 제주가 먼저였다. 2017년 2월 성신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제주 우도로 내려가 2년 가까이 머물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신나게 작업했다. 광부의 삶에 해녀의 삶이 추가됐다. 깊은 땅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작업하는 광부들과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참아가며 작업하는 해녀들은 여러모로 비슷했다. 정선에 사북항쟁이 있었다면 제주엔 4.3항쟁이 있었다.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서러움을, 그들에 대한 우리의 고마움을 그림으로 표현해나갔다.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 몰입할 때의 행복감이 조금 더 컸다. “2018년 말 삼탄아트마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정선에 왔어요. 2019년 4월 ‘엉성’을 오픈하면서 정착하게 됐고요. 미술학원이 없는 지역이니 공간을 그쪽으로 활용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주민들의 손을 잡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귀향의 힘일까. 그는 작년에만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3월엔 전주 갤러리파인에서 《땅의 숨길展》을, 4월엔 정선터미널 문화공간에서 《빛의 뿌리 展》을 선보였다. ‘어두운 그림들인데 밝은 느낌이 든다’는 관객 반응이 가장 좋았다. 어둠에서 밝음을, 절망에서 희망을 읽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장소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꽃 피는 4월에 또 한번 개인전을 연다. 꼼짝없이 작업에 매달려야 하는데도, 대중들과 만날 생각을 하면 그는 벌써 가슴이 뛴다. “제 작품 가운데 <숨결>을 가장 좋아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중한 무엇을 희생하신 분들을 생각하며 그렸거든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때 그 감정이 살아나요. 초심으로 돌아가죠.” 다음을 향해 총총히 나아가면서도, 마음만은 번번이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이보다 눈부신 ‘도돌이표’를 본 적이 없다.

(오른쪽)진주영 _ 숨결 _ 장지에 먹과 펜, 145 X 11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