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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우리 옛집,
굴피집

  • WRITE 편집실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화전을 일구며 살다 간
쓰러진 고목 위로 귀틀집 혹은
너와집이나 굴피집 한 채 지어
몸 들였을 까맣게 그을린 삶들
맨손으로 도끼와 톱과 낫과
삽과 괭이를 부린
지도에서 사라진
고단한 빈손들이 어른어른 지나간다 곽효환, <여름 숲에서 그을린 삶을 보다>, 2018

자연으로 들어갈수록 자연이 주는 포근함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날카롭고 높은 무채색 빌딩숲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보내는 탓에 어쩌면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것에 더욱 갈증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파트가 현대인의 기본적인 주거형태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자연의 것을 이용해 지은 다양한 집들이 존재했다. 황토와 짚을 이용한 초가집, 흙을 구워 만든 기와를 이용한 기와집, 너와나무를 이용한 너와집, 참나무를 이용한 굴피집 등은 자연의 재료만으로 각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맞게 지어졌다. 그중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는 추운 기후와 습기에 강한 너와집과 굴피집을 짓고 살았다. 굴피집은 주로 강원도 산간 지방의 화전민들이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어 지은 집으로, 흔히 참나무 껍질을 ‘굴피’라고 하는 데서 그 이름이 만들어졌다.
원래는 너와(나무판)로 지붕을 이었으나 1930년대 이후 너와 채취가 어렵게 되면서 너와집 대신 굴피집이 생겨났다. 화전민들은 나무에 물이 오르는 8월 처서가 되면 참나무 껍질을 벗겨내 돌멩이로 눌러 반듯이 펴 준 후 지붕에 올려 굴피집을 지었다. 이때 가장 신경 쓴 것은 지붕에 큰 돌이나 너시래(통나무)를 얹어 눌러 굴피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은 굴피집은 수명이 길어 ‘기와 천년, 굴피 만년’이라는 속담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속담에서 말하는 ‘만년’과는 달리 목재로서 굴피 재료 자체가 갖는 한계로 인해 2~3년에 한 번씩은 손을 보아야 한다. 그동안 노출되었던 굴피 부분은 안쪽으로, 안쪽 부분은 바깥쪽으로 바꾸어 놓거나 새롭게 교체해야 지붕이 더 오래 간다.
자연의 재료로 지은 굴피집은 수명이 길 뿐만 아니라 보온이 잘되고 습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해 추운 겨울과 비가 많이 오는 기후에도 안성맞춤이다. 굴피집은 온돌방, 도장방(창고), 외양간, 봉당 등이 한 지붕 아래 외벽으로 감싸져 있어 겨울의 추위를 막아내고 산짐승들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고 집안에는 코굴(벽난로), 화티(불씨를 모아 두는 곳), 두둥불(호롱불을 설치하는 곳)등도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이렇게 자연 친화적 소재에 우수한 기능까지 겸비한 굴피집은 안타깝게도 현재는 그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970년대만 해도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 개조되거나 사라지고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된 한 채만이 남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가면 국가민속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된 ‘삼척 대이리 굴피집’을 만나볼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소재로 지어져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굴피집.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현대 가옥 속에서 굴피집은 사라졌지만 굴피 지붕 사이사이마다 스며든 옛사람들의 삶의 지혜는 지금까지 이어져 그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