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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지고 볶고,
    우리네 삶이

    담긴
    밥상

    • EDITOR 차지은
    • PHOTO 아자 스튜디오
  •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 여량. 한민족의 정서가 담긴 여량의 길목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음식점과 미용실, 상가들이 여전히 자리해 푸근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 곳에서 쌈밥집을 운영하던 박금자 점주는 얼마 전 ‘정태영삼 맛캐다!’ 프로젝트를 통해 ‘아나리 오리&쌈’을 새롭게 오픈했다. 그간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는 깨끗이 털어내고 그녀의 맛있는 손맛은 그대로 살린 덕에 빛바랜 길목엔 보글보글, 지글지글 맛있는 이야기로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정·태·영·삼 맛캐다! 프로젝트 13호점 아나리 오리&쌈 ‘정·태·영·삼 맛캐다!’ 프로젝트 13호점 ‘아나리 오리&쌈’ 박금자 점주님
동네 쌈밥집에서 찾아오는 ‘맛집’으로

가게 이름 ‘아나리’는 아리랑의 옛말이다. 정선 아리랑이 시작된 여량에 ‘아나리’라는 간판이 걸린 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원래는 쌈밥이랑 이것저것 다 팔았는데 ‘정태영삼 맛캐다!’ 프로젝트를 통해 메뉴를 추렸어요. 선택과 집중을 해서 그런지 식사도 더 빠르게 낼 수 있어 오시는 손님들도 좋아하고 매출도 배로 올랐어요.” 2007년부터 10여 년간 한 동네에서 밥집을 운영한 박금자 점주는 그간 주민들에게 친근한 밥상을 내어주곤 했다. 손님들에게 따듯한 밥을 내어주는 게 그에겐 기쁨이었지만 장사는 별개의 문제였다. 맛은 자신 있었지만, 장사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한 탓인지 운영은 늘 풀리지 않는 숙제 같았다. 가게 운영으로 고민이 많던 그때, 그녀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서 ‘정태영삼 맛캐다!’ 프로젝트에 지원해보라는 안내였다.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도전했지만, 당시 박금자 점주는 유독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그녀의 감은 틀리지 않았고, 아직도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그날의 벅찬 마음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정태영삼 맛캐다 프로젝트 13호점으로 선정된 ‘아나리 오리&쌈’은 자신만의 색을 입은 하나의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바뀌지 않은 건 박금자 점주의 밝은 미소뿐이다. 좌식이던 의자는 손님들이 앉기 편한 입식으로 깔끔하게 재배치됐고, 화이트톤 바탕에 옐로우톤으로 포인트로 준 인테리어부터 메뉴, 운영, 서비스 전반에 걸친 교육 끝에 문을 열었다.
“기존 손님들은 바뀐 가게를 보고 신청하길 잘했다며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어떤 분은 멀리서 찾아오셨는데, 맛있다면서 SNS에도 올려주시고, 다음을 약속하기도 하고요. 손님 한분 한분의 반응과 응원에 매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요.”

정선의 자연 닮은 쌈밥과 오리진흙구이

탁탁, 물기를 털어낸 신선한 쌈 채소에 윤기가 흐르는 흰밥과 양념이 듬뿍 밴 제육볶음 한 점 올려 먹는 쌈밥. 이보다 더 정겨운 밥상이 있을까. 올해로 꼬박 13년째 쌈밥집을 운영해온 박금자 점주에게 쌈밥은 가장 자신 있는 메뉴다. 이 쌈밥으로 그간 자식과 손주들을 키웠다. 맛캐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그녀의 제육쌈밥과 주꾸미쌈밥의 맛은 셰프에게 인정받아 맛을 더하거나 뺀 것 없이 대표메뉴로 선정되었다. 대신 전과 같은 가격에 칼국수를 추가해 메뉴 구성을 더욱 풍부히 하고, 제육쌈밥은 ‘아라리총각쌈밥’, 주꾸미쌈밥은 ‘아라리처녀쌈밥’이라는 재밌는 이름을 붙였다. 쌈밥 외에 기존 메뉴는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특별 메뉴를 만들었다. 각종 한약재와 불린 쌀로 속을 가득 채운 오리를 450℃의 황토가마에서 세 시간 동안 구워낸 오리진흙구이는 겉은 쫀득하고 속은 야들야들하다. 오리진흙구이는 올여름 박 점주에게 쓴맛과 단맛을 동시에 선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가마에서 오리를 굽는 동안 불 온도가 내려가거나 올라가지 않도록 계속 지켜봐야 해요. 안그래도 더운 여름에 가마를 지키고 있으려니 너무 덥더라고요. 그래도 복날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보양식을 대접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만들었지요. 특히 여량리엔 이 메뉴가 없어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초심으로 돌아가 가마 앞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배운 메뉴인 만큼 애착도 남다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아요. 메뉴 선정을 하면서 ‘이거다’, ‘해보자’하는 마음이 불끈 솟았어요. 그 덕에 우리 집 자랑거리가 생긴 거죠.”

더 깊은 정선의 맛을 찾다

미용사 출신인 박금자 점주는 2007년 쌈밥집을 시작하면서 가위 대신 칼을 잡았다. 홀몸으로 두 아들과 손주들까지 키우기 위해 매일 가게 문을 열어야 했던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은 ‘긍정’의 힘이었다. 다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밝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희망의 씨앗을 틔운 박금자 점주는 앞으로 더 큰 도약을 준비한다.
“도움 주신만큼 ‘정태영삼 맛캐다!’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려고요. 더 좋은 레시피가 있다면 보완하고 발전시켜서 더 맛있게, 더 건강한 밥상을 대접하고 싶어졌어요.”
구슬픈 한(恨)의 소리로 알려진 아리랑. 아리랑을 한자로 표기하면 ‘我理朗’이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찾은 ‘아나리 오리&쌈’에겐 이번 프로젝트가 말하자면 ‘아리랑’인 셈이다. 쌈밥에 기대 힘차게 살아온 박 점주에게도, 빛바랜 골목에도, ‘아나리’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자신만의 색을 찾아, 더 깊은 정선의 맛을 찾아가는 아나리 오리&쌈이 지역에 더 큰 응원을 가져다주길 기대해본다.